계약서에 없는 이유로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 믿음이 깨졌을 때

계약서에 없는 이유로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 믿음이 깨졌을 때

모모씨는 어떤 일을 전문 업체에 맡기는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서에는 "이러이러한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해지 사유가 딱 정해져 있었죠. 그런데 일을 맡긴 뒤, 그 업체 담당자가 뒷돈(리베이트)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모모씨는 더는 그들을 믿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계약서엔 그런 해지 사유가 없습니다. "계약서에 없는 이유로도 계약을 끝낼 수 있을까?" 실제 대법원 판례(2025다219495)로 풀어보겠습니다.

📌 핵심 한 줄: 계약서에 해지 사유를 정해뒀어도, 믿고 맡기는 관계(위임)에서 상대가 배신행위로 신뢰를 깨뜨려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 계약서에 없는 사유로도 해지할 수 있습니다.


1. 모모씨의 사정 — 믿고 맡겼는데 뒷돈을?

모모씨가 맺은 것은 '위임계약'에 가까운 계약이었습니다. 위임계약은 "내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을 믿을 만한 상대에게 맡기는" 계약이에요. 그래서 '신뢰'가 계약의 뼈대가 됩니다.

그런데 일을 맡은 업체의 담당자가 공사 계약금액을 부풀린 뒤 9,000만 원의 리베이트를 챙겼어요. 맡긴 일을 충실히 처리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사익을 챙긴 거죠. 모모씨는 더 이상 그 업체에 일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문제는, 계약서에 적힌 해지 사유 목록에 '이런 경우'는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모모씨의 질문은 이거예요. "계약서에 해지 사유가 정해져 있는데, 거기 없는 이유(리베이트로 인한 신뢰 파탄)로도 계약을 끝낼 수 있을까?"

2. 원칙 — 계약서에 정한 대로만 해지할 수 있다

원래 민법에는 위임계약을 언제든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게 한 규정(제689조)이 있어요. 그런데 이 규정은 '임의규정'입니다. 임의규정이란, 당사자가 계약서로 다르게 정하면 그 약정이 우선하는 규정을 말해요.

그래서 모모씨처럼 계약서에 "이런 사유로, 이런 절차를 거쳐서만 해지한다"고 따로 정해뒀다면, 원칙적으로 그 약정대로만 해지할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문제도 계약서가 정한 대로 처리되고요. 계약서가 일종의 '약속한 규칙'으로서 민법의 기본 규정보다 앞서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 법에는 "원래 이렇게 한다"는 기본값이 있지만, 두 사람이 "우리는 이렇게 하자"고 따로 약속(계약서)하면 그 약속이 우선해요. 그래서 1차적으로는 계약서에 적힌 해지 사유를 봐야 합니다.

3. 예외 — 신뢰가 깨지면 그것만으로도 해지 가능

그렇다면 계약서에 없는 사유로는 절대 해지를 못 할까요? 대법원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이 판례의 핵심이 있어요.

위임계약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특별한 신뢰관계'를 기초로 계속 이어지는 계약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이렇게 봤어요.

계약서에 정한 해지 사유가 없더라도, 한쪽의 의무 위반이나 부당한 행위로 신뢰관계가 '파탄' 상태에 이르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상대방은 그것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왜일까요? 위임은 '믿고 맡기는' 관계인데, 그 믿음 자체가 깨져버리면 계약을 유지할 근본 토대가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계약서에 그 상황을 일일이 적어두지 않았더라도,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상 더는 관계를 강요할 수 없다는 거죠.

비유하자면 — 믿고 돈 관리를 맡긴 사람이 그 돈을 몰래 빼돌렸다면, "계약서에 '횡령 시 해지'라고 안 적혀 있으니 계속 맡겨야 한다"고 할 수는 없겠죠. 믿음이 무너진 순간, 계약을 이어갈 이유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4. 그래서 모모씨는? (판례의 결론)

대법원은 모모씨 측(일을 맡긴 쪽)의 해지를 적법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래요.

  • 업체가 주장하는 계약서상 해지 사유들은 인정되지 않았다. (계약서 문구만 보면 해지 사유 없음)
  • 그러나 담당 직원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로 인해, 맡긴 일을 충실히 처리할 거라는 신뢰관계가 파탄났다.
  • 따라서 계약서에 그 사유가 없더라도, 신뢰 파탄을 이유로 한 해지는 적법하다.

또한 그동안의 업무대행수수료 정산도 다퉈졌는데, 법원은 받을 수수료에서 9,000만 원의 손해배상(리베이트로 인한 손해)을 상계하고 남은 금액을 지급하도록 한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결국 양쪽의 상고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상고 기각).

📌 모모씨가 얻은 교훈 — "계약서에 적힌 해지 사유가 1차 기준인 건 맞아. 하지만 상대가 배신행위로 믿음을 깨버리면, 계약서에 그 사유가 없어도 신뢰 파탄을 이유로 계약을 끝낼 수 있구나. 믿고 맡기는 관계일수록, 그 믿음이 법적으로도 무겁게 다뤄지는 거였어."

한눈에 정리

질문
해지는 무엇이 1차 기준?계약서에 정한 해지 사유·절차
민법의 자유해지 규정(제689조)은?임의규정 → 계약서로 배제·변경 가능
계약서에 없는 사유로 해지 가능?신뢰관계가 파탄났다면 가능
이 사건에서 신뢰 파탄의 원인은?담당 직원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
최종 결론은?해지 적법 + 수수료는 손해배상 상계 후 지급, 상고 기각

마치며

계약 분쟁에서는 보통 "계약서에 뭐라고 적혀 있나"가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이 판례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줘요. 특히 믿고 맡기는 위임 관계에서는, 그 믿음을 깨뜨리는 배신행위가 있으면 계약서 문구를 넘어 해지가 가능합니다. 모모씨처럼 상대의 부당행위로 더는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계약서에 해당 조항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신뢰 파탄'이라는 관점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이 글은 대법원 2026. 4. 2. 선고 2025다219495 판결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정보입니다. 등장인물 '모모씨'는 가상의 인물이며, 구체적 계약 내용과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 사건은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는 변호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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